“쓰 읍…후…… 쓰 읍…후……”
“너는 온종일 담배만 피냐? 내가 시킨 거는 다 했어?”
“죄송합니다. 빨리해서 올리겠습니다.”
김 과장 저 새끼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한다. 지도 담배 피우러 올라왔으면서.
온종일 일에 치여 힘들었던 나는 퇴근 후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거하게 한잔을 했다.
만취가 되어 집에 가는 길,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이려 하는데 라이터마저 고장이 났다.
마침 앞에 노점상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할머니, 라이터 있어요?”
그때 내 눈에 이상한 라이터가 하나 보였다. 라이터는 영롱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라이터 아래에는 이상한 글이 쓰여 있었다.
‘사용할 수 없는 라이터’
“할머니 이 라이터는 뭐에요?”
“사용할 수 없는 라이터야.”
뭔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나는 술에 취해 라이터를 집었다.
알 수 없는 호기심에 라이터가 3만 원이라고 했는데도 덥석 집어 사버렸다.
다음 날 아침,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시계를 보니 8시17분.
지각이다.
나는 재빠르게 옷을 입고 지하철로 뛰어갔다.
“아주 가지가지 한다. 오늘은 지각까지 하셨어요?”
도착하자마자 김 과장의 잔소리가 쏟아진다.
“어제 올린 보고서는 뭐 이렇게 틀렸어? 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죄송합니다. 다시 올리겠습니다.”
오전 내내 보고서를 수정하고 잠시 쉬는 차에 옆에 동료 사원이 담배를 피우러 가자고 했다.
근데 왠지 오늘따라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았다.
하루 한 갑씩 피던 내가 오늘 온종일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니 너무 신기했다.
'설마 어제 산 라이터가 그래서……?'
며칠이 지나도록 담배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너무나 놀라웠다.
퇴근하는 길에 노점상 할머니가 있던 길을 다시 찾아갔다.
마침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 할머니 덕분에 제가 금연했어요!!”
“거 참 다행이구먼.”
노점상에는 다른 물건이 놓여 있었다.
‘사용할 수 없는 지우개’
“할머니, 이거는 또 뭐에요?”
“사보면 뭔지 알게 될 거야.”
“이거는 얼마에요?”
“10만 원.”
나는 비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이 물건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웬일로 오늘은 보고서를 하나도 안 틀렸어? 오늘처럼만 하라고. 오늘처럼만.”
김 과장이 처음으로 칭찬했다.
정말 사용할 수 없는 지우개 때문일까?
나는 너무 신기했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그 이후 내가 쓰는 보고서와 기획안은 수정할 것이 없었다. 모두가 나를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한순간에 담배도 끊고, 일도 잘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 이후 나는 완벽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옛날의 나의 모습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일도 열심히 하고, 승진도 하며 승승장구해 갔다.
간간이 퇴근하던 길에 노점상 할머니가 있는지 찾아가 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모습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차츰 할머니의 기억은 희미해져 갔다.
6년 뒤, 나는 고속승진을 하여 팀장의 자리에서 팀을 이끌고 있었다.
동료들 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승진에 주변의 시기, 질투도 있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노점상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 너무 오랜만이에요!!”
이번에는 노점상에 ‘사용할 수 없는 교통카드’가 있었다.
“할머니 이거는 얼마에요?”
“50만 원.”
“싸네요, 주세요.”
항상 제값보다 훨씬 높은 값어치를 했던 물건들이었기에 의심 없이 사용할 수 없는 교통카드를 구매했다.
하지만 어떻게 사용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회사 긴급임원회의를 통해 팀장에서 상무이사로 인사발령이 확정되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출퇴근 시에는 전용 자가용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사용할 수 없는 교통카드, 사용할 필요가 없는 교통카드.
나는 앞으로 교통카드를 사용할 필요 없이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에 너무나도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행운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부사장의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차를 타고 퇴근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노점상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있는 곳 근처에 와서 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오늘 마침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 너무 감사해요. 할머니 덕분에 제가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어요.”
“그것 참 잘된 일이구려……”
할머니의 옆에는 커다란 관이 있었다.
‘사용할 수 없는 관’
관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설마 죽지 않는다는 건가? 이거야말로 정말 최고의 상품이었다.
“이 관은 얼마인가요?”
“관 값은 100만 원이오……”
“정말 싼 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사용할 수 없는 관을 산 다음 날, 나는 공사현장을 시찰했다.
“으 아악!! 빨리 피해요!!”
위에서 커다란 H자 철근이 떨어졌다. 철근은 절묘하게 나를 피해갔다.
역시……나는 맞지 않았다.
“부사장님! 괜찮습니까? 안 다치셨어요?”
사용할 수 없는 관만 있다면, 난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손에 넣은 것이다.
며칠 뒤, 회사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회사의 전 직원들과 함께 강원도의 큰 호텔에서 하게 되었다.
멋진 절벽에 자리 잡은 호텔의 경치는 정말 장관이었다.
“건배!!”
다들 술을 거나하게 마시며 즐겼다.
“부사장님 정말 부럽습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부사장이 되시고.”
“돈도, 사랑도 부사장님 마음대로 아닙니까?”
술에 취한 나는 주변에서 띄워주는 소리에 한마디 거들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난 목숨까지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목숨이요?”
“난 절대로 죽지 않아!”
“부사장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하하.
조금 취하셨나 봐요. 안 하던 농담을 다 하시고.”
“농담이 아니라니까! 나는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고!”
나는 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얘기하던 직원들과 함께 호텔을 나와 절벽으로 향했다.
“제법 뛰어내릴 맛이 나는 곳이야.”
“부사장님!! 그만 됐습니다!! 위험해요!!”
“두 눈 뜨고 똑똑히 보라고! 이게 영원한 생명이니까.”
나는 10m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없는 관을 가진 이상, 난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어제 저기서 자살한 사람이 있다면서?”
“영원한 생명이라나 뭐라나, 자기는 죽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쳤대요.”
“술에 꽐라가 됐었데요.”
“하여간 술이 문제라니까.”
“저렇게 험한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시체도 떠오르지 않는데…”
“그러게요. 장례식도 해 줄 수 없겠네요. 불쌍해라…”
나는 죽어버렸다.
난 사용할 수 없는 관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도 관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